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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果川)의 법정동(法定洞)
▣ 4. 과천(果川)의 법정동(法定洞)

○ 1) 갈현동
○ 2) 문원동
○ 3) 관문동
○ 4) 과천동
○ 5) 막계동
○ 6) 별양동
○ 7) 부림동
○ 8) 원문동
○ 9) 주암동
○ 10) 중앙동

▣ 1) 갈현동(葛峴洞)

과천시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동으로 ‘가루개[葛峴]’라는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양시의 관양동(冠陽洞)과 접해 있다.
‘가루개’라는 고개 밑 마을이어서 그 이름 역시 ‘가루개’ 또는 ‘갈고개’인데, ‘갈현(葛峴)’이란 이름은 이 토박이 땅이름을 바탕으로 한다.
‘고개’라는 말은 그 앞의 어느 음절이 있을 때 곧잘 ‘오개’ 또는 ‘개’로 발음이 변하는 수가 많다. 예를 들어 서울의 ‘배고개’가 ‘배오개’(종로4가와 인의동에 걸쳐있던 마을)로 변한 것이라든지【주】20) ‘애고개’가 ‘애오개’(마포구 아현동)로 변한 것【주】21) 등이 그 예이다. 이 곳의 ‘갈고개’ 역시 그와 비슷한 과정으로 ‘가루개’가 되었으리라고 본다.

갈고개>갈오개>가로개>가루개

여기서의 ‘갈’은 ‘갈림(分·支)’을 뜻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관악산과 청계산을 잇는 지맥에 의해 물이 양쪽으로 나뉘어 흐르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곳에 칡나무가 많아 이 이름이 나왔다는 설도 있다.
갈현동(葛峴洞)은 본래 과천군 군내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루개’와 그 근처의 ‘가일(加日)’·‘찬우물[冷井]’·‘벌말’·‘제비울’·‘옥탑골[玉塔谷]’·‘자경골[自耕]’을 합해 갈현리(葛峴里)라 해서 시흥군 과천면에 편입했다가 과천이 시(市)가 되면서 갈현동(葛峴洞)이 되었다.


▣ 2) 문원동(文原洞)

갈현동(葛峴洞)과 막계동(莫溪洞) 사이에 있는 곳으로 북서쪽은 관악산, 남동쪽은 청계산을 끼고 있는 아늑한 지역이다.
조선시대의 과천군 군내면 지역인데, 1914년에 이 곳의 ‘향교말[校洞]’·‘다락터[樓基]’·‘홍촌말[洪村]’·‘새술막[外店]’·‘구리안[九里內]’·‘배랭이(別陽)’등을 병합하여 과천 문묘(향교)가 있어서 문원리(文原里)라 해서 시흥군 과천면에 편입하였는데, 과천이 시가 된 후에 문원동(文原洞)과 중앙동·별양동으로 분리되었다.
향교말 뒤쪽에 시흥향교(始興鄕校: 果川鄕校)가 있는데, 관악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그 옆으로 나 있다. 향교 외에 관악산 꼭대기에 있는 연주대(戀主臺)·연주암(戀主庵)·말바위[龍馬岩] 등이 행정구역상으로는 모두 이 문원동(文原洞)에서 분리된 중앙동에 속한다.

▣ 3) 관문동(官門洞)

본래 과천군 군내면의 지역으로 옛날부터 과천관아의 문이 있어서 ‘관문골[官門洞]’로 불리던 곳이다. 그러나 관아가 있는 마을이거나 있던 마을이 대개 ‘읍내(邑內)’로 불리듯이 이 곳도 그렇게 불려 왔다.
‘읍내’라고 불리던 이 곳은 근처의 ‘점말[內店]’이란 마을과 합해 1914년 관문리(官門里)가 되어 시흥군 과천면에 들어가게 되고 그 면(面)소재지가 된다.
1982년에 경기도 과천지구출장소 북부지소【주】22)의 관할이었던 이 곳은 1986년 과천이 시가 되면서 관문동(官門洞)이 되었다.
현재는 행정동인 중앙동에 속한 이 곳은 과천이 군(郡)이었을 때는 군수가, 현(縣)이었을 때는 현감이 상주했던 곳이다.

“현감이면 다 과천현감이냐?”
“서울 서울 무섭다고 과천서부터 긴다”

라는 말이 있었는데, 옛날 과천현감 중에는 이 읍내를 지나는 길손들에게 남태령을 무사히 넘을 수 있게 보호해 준다는 이유로 돈을 받아내는 자도 있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속담이 나올 만큼 과천현감이 두려웠던 것이다. 최근까지도 별 힘도 없는 사람이 아니꼽게 권세를 부릴 때 이렇게 빈정대는 말까지 있었다.

“지가 뭐 과천현감이나 되나?”

과천현감도 무조건 그 통과세를 받을 수는 없었던지 관 앞에서 담뱃대를 물고 지나갔다느니 말을 내리지 않고 지나갔다느니 하는 구실을 붙여 길손들을 동헌 앞까지 데려와 귀찮게 들볶으며 돈을 내놓도록 했다고 한다. 아전들은 심지어 가죽신을 신은 것까지 트집잡아 문세를 물렸다. 이 문세 수탈로 인해서 길손들은 서울 문턱인 이 과천 읍내에서 적지 않은 돈을 털렸다.
한양의 남쪽 관문 구실을 했던 과천은 삼남(전라·충청·경상도)지방 사람들이 서울로 오거나 서울에서 내려가거나 할 때 당연히 거치게 되어 있는 중요 길목이었다.【주】23)
『춘향전』에 보면 이도령이 암행어사가 되어 전라도로 내려가는 대목이 나오는데, 거기에도 역시 과천 땅을 지난 것으로 되어 있다.

“ … 동자기 바삐 건너 승방들·남태령·과천·인덕원 중화【주】24)하고, 갈미·사근내·군포내·미륵당 지나 오봉산 바라보고 지지대를 올라서서 … ”『춘향전』(고본)【주】25)

이처럼 과천은 옛날 교통의 요지였고, 그 과천 안에서도 관문리가 그 중심 마을이었다.


▣ 4) 과천동(果川洞)

이 곳은 남태령 밑 즉, 옛날의 과천면 하리(下里) 일대와 우면산(牛眠山) 밑의 주암리(注岩里)를 합해 새로운 행정동을 만들면서 생겨난 지명이다.
하리 일대도 본래 과천군 군내면의 지역이다. 1914년 ‘뒷골[後洞]’·‘하락골’·‘안골[內谷]’·‘한내[寒溪·寒內村·寒內川]’·‘삼거리[三巨里]’·‘선바위[立岩·禪岩]’·‘광창(光昌)’을 병합하여 남태령 아래쪽 마을이란 뜻의 하리(下里)란 이름을 붙여 시흥군 과천면에 편입하였는데, 과천이 시로 승격하면서 과천동(果川洞)으로 개칭되었다.
옛날 길손들이 과천 읍내를 거쳐 이 곳에 이르러 남태령을 넘어 동재기나루[銅雀津]쪽으로 갈 것이냐, 말죽거리를 거쳐 두뭇개나루[豆毛浦·豆尾津]쪽으로 갈 것이냐 망서리던 세 갈래 길이 이 곳에 있다.

▣ 5) 막계동(莫溪洞)

옛날 ‘맥계’라고도 불리던 마을이 있는데, 이 이름은 한자식 이름 ‘막계(莫溪)’가 변한 것이다.

막계>맥계(맥개)

‘막계(莫溪)’라는 이름은 원래 이 곳에 흐르는 내가 맑아 ‘맑은내’로 불리던 것이 ‘맑내’·‘막내’가 되고, 그것을 한자로 취해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의 ‘청계산(淸溪山)’이란 산이름도 이 ‘맑은내’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도 하는데, 이 ‘맑내(맑은내)’는 한자식 이름으로 ‘청계(淸溪)’라고도 했다는 것으로 보아 상당한 수긍이 간다. ‘맑내’는 청계산의 청계사(淸溪寺) 근처 절고개[寺峴]에 그 물뿌리를 두고 북서쪽으로 흘러 남태령 밑 한내[寒溪] 마을에 이르러 양재천(良材川)에 합하는데, 지금은 이 물이 흐르는 청계산 깊은 골짜기를 막아 과천 저수지를 만들어 놓았다.
이 일대도 본래 과천군 군내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맑내[莫溪]’마을 근처의 ‘갱맹이[光明]’·‘산골말’·‘능안말[陵內]’·‘벌말[坪村]’을 병합하여 ‘맑내’의 이름을 따 막계리(莫溪里)라 해서 시흥군 과천면에 편입되었는데, 과천이 시(市)가 될 때 막계동(莫溪洞)이 되었다.
이 곳 과천저수지 안쪽엔 1984년 준공된 과천 서울대공원, 그 옆으로는 1989년 완공한 과천경마장이 있다.

▣ 6) 별양동(別陽洞)

1982년 6월 10일 경기도 조례 제1256호에 의해 문원리(文原里) 일부를 갈라서 별양동(別陽洞)이라 했다.
문원동(文原洞) 새술막 남동쪽에 있는 마을이 토박이 땅이름으로 ‘배랭이(배래이)’였는데, 그것의 한자식 지명이 ‘별양(別陽)’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동이름으로 정한 것이다. 정문형 묘갈에는 별왕리(別旺里)로, 그리고 심우준 묘갈에는 별왕촌(別王村)으로 각각 기록되어 있다.
‘별양(別陽)’을 한자의 뜻 그대로 풀어 ‘특별히 양지바른 곳’의 의미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이 곳은 청계산의 낮은 산자락이 삼태기처럼 싸돈 골짜기 안으로 햇빛이 많이 들지 않아 ‘양지(陽地)’의 의미로 땅이름이 붙여질 아무런 이유가 없다. 차라리 ‘양지’의 의미가 들어가야 한다면 마을이 남동쪽을 향하고 있는 그 건너쪽인 중앙동의 ‘향교말’이나 ‘홍촌말’이 적절할 것이다.
‘배랭이’는 ‘비탈’의 뜻인 ‘별(밸)’에 접미사 ‘-앙이’가 붙어 이루어진 이름인 듯하다.【주】26)

별(밸)+앙이=별양이(밸앙이)
벼랑이>배랑이>배랭이

지금의 말의 ‘비탈’·‘비알’이란 말은 원래 ‘비탈진 곳’이란 뜻의 옛말인 ‘빌’을 그 뿌리로 한다.

빌(빗)+달(地)=빗달
빗달>비딸>비탈

‘빌’이 개음절화하면 ‘빌’이 되는데, 이것이 ‘밸’·‘별’ 등으로 옮겨가면서 많은 관련 지명을 이루어 놓았다.
· 부수배리(부수밸):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직원리
· 꽃비리(곶빌, 花硯): 경북 문경군 농암면 농암리
· 꽃벼루(곳별, 花峴):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리

위 지명들에서 ‘-배리’·‘-비리’·‘-벼루’ 등은 모두 ‘밸’·‘빌’·‘별’ 등의 연체형으로서 모두 ‘비탈’의 뜻을 갖는다.【주】27)
과천의 ‘배랭이’는 아래 위로 크게 둘로 나뉘는데, 골짜기 안쪽으로 있는 것이 ‘윗배랭이[上別陽]’이고, 골짜기의 바깥인 아래쪽에 있는 것이 ‘아랫배랭이[下別陽]’이다.
골짜기를 계속 오르면 청계산의 한 봉우리인 응봉(鷹峰) 마루가 된다.


▣ 7) 부림동(富林洞)

1982년 6월 10일 경기도 조례 제1256호에 의해 관문리(官門里) 일부를 갈라서 과천의 옛 이름을 따서 부림동(富林洞)이라고 하였다.
‘부림(富林)’이란 고려 성종대에 과주군의 별칭으로 붙인 이름인데, 조선의 정조 임금이 이 곳에 들렀을 때 과천현의 관아에 손수 ‘부림헌(富林軒)’이란 현판을 써 주기도 했다.

▣ 8) 원문동(原文洞)

1982년 6월 10일 경기도 조례 제1256호에 의해 문원리(文原里) 일부를 갈라서 만든 동으로, 행정동인 갈현동(葛峴洞)에 포함된다.



▣ 9) 주암동(注岩洞)

큰 바위가 청계산 북쪽 줄기의 기슭에 줄지어 있어 마을이름이 ‘줄바위’ 또는 ‘죽바위’이던 것이 한자의 ‘주암(注岩)’으로 취해지게 됐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 ‘줄바위[注岩]’마을과 근처의 ‘돌무께[石浦]’·‘삼부골[三浦]’을 합하여 주암리(注岩里)라 해서 시흥군 과천면에 편입시켰는데, 과천이 시로 승격하던 1986년에 주암동(注岩洞)으로 되었다.
과천시 대부분의 지역이 옛날에 과천군 군내면(郡內面)이었던 데 반해 이 곳 주암리(注岩里)만 유독 동면(東面) 지역이었다. 마을 앞으로 과천 여러 지역의 물이 모여 흐르는 양재천(良才川)이 지나고 있다.



▣ 10) 중앙동(中央洞)

1982년 6월 10일 경기도 조례 제1256호에 의해 문원리(文原里)의 일부를 갈라서 과천의 가운데에 있는 지역인 데다가 정부제2종합청사가 위치해 있어 중앙동(中央洞)이라 했는데, 관문동(官門洞)과 합해서 행정동을 이루고 있다.
현재 중앙동 동사무소내에는 정조가 화성군 태안읍에 있는 현융원(융릉: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갈 때 쉬던 객사인 온온사(穩穩舍)가 있다.